Drive My Car

Status
Completed
Period
2022/01/26
Category
Rating
Emotion
Genre
Drama
Release
2021
Location
Production
Culture Entertainment, Bitters End, Nekojarashi
Publishing
Provider
Producer
Tsuyoshi Goro
Production Design
Hyeon-Seon Seo
Director
Ryusuke Hamaguchi
Writter
Haruki Murakami(short story), Ryusuke Hamaguchi, Takamasa Oe
Editing
Azusa Yamazaki
transrator
DOP
Hidetoshi Shinomiya
Lighting
Action
Art
Kensaki Jo
Animator
Color
Visual
Spade & Co.
Music
Eiko Ishibashi
Sound
Korean unit
Actor
Hidetoshi Nishijima, Toko Miura
Stunt
Episodes
Original
Murakami Haruki <Drive My Car>, 《女のいない男たち》, 2020
Favorite
Watching now
point
Level
4
Level#
4
note
뽐을 내지 않는 연출이 담백하게? 느껴졌다~~ '좋은 촬영'이란 '관객이 영화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고, 그런 점에서는 러닝타임 내내 굉장히 몰입해서 봤기 때문에 충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80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대해서는 불필요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여분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차를 거울같이 보이는 이에게 맡기고 운전대가 아닌 자리에 앉아 풍광을 바라보며 자신을 마주하게되는 가후쿠처럼..
나는 상태들을 'A는 B이다'라고 설명하고 싶다. 그래서 모호함을 모호하게 표현하는 영화를 보고나면 모호함을 분해하고 싶다고 느낀다.. 그런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쿠키런을 하면서 아주 한참동안이나 영화에 대한 말을 궁해봐도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하루키의 원작을 본 적이 없으니 스피커에 대고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느끼는 가장 적확한 감상의 "어.. 이.. 이 영화는 제법... 모호합니다.."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바보라서 죄송합니다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체호프의 장막극 <바냐 아저씨>를 주 소재로 가미하여 각색되었다. 그리고 <바냐 아저씨>는 기능적으로 영화 내내 해체된 채로다. 생전 오토가 녹음한 음성을 통해 영화 전반에 극을 토막내어 전시하고, 영화 속 극연출에서는 상호작용 도구 중 '언어'을 차단하여 리딩씬에서는 아예 각개의 대사로써 작용하도록 보여준다.
주인공 가후쿠는 딸의 죽음에서 와이프 오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실에 대해서, 고통에 대해서 침묵한다. 모순적으로 한편 딸의 죽음 이후 TV를 그만두고 무대로 돌아온 가후쿠는 소통을 위한 청각적 도구를 '메세지'는 남기되 장애물로써 각기 다른 언어채널을 쓰는 등장인물들을 배치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영화 속 <바냐 아저씨>의 등장인물들은 외국어를 쓰는 상대 배우를 바라보며 청각 뿐 아니라 다른 감각을 동원하여 각 제스쳐에 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마치 장애물로 인해 되려 언어 장애를 가진 배우가 수화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기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진 상황을 가후쿠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사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은 단지 영화 속 <바냐 아저씨>의 배우들이 대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가후쿠는 바냐 역을 분한 타카츠키에게 '단지 대본에게 대답하라'고 지시한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묻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감각은? '오토가 세상을 떠난 날 원래 이야기하려고 했던 결의는 무엇이었고, 그것을 들었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의 꼬리의 끝에 가후쿠는 사실 '타인에 대해서 우리는 끝내 이해할 수 없고, 그저 나의 내면에 답해야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테이프 음성의 빈 공간에 자신의 대사를 욌던 그는 그 사실을 외면해왔을 뿐이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밤과 낮을, 해와 비구름을 마주하며 계속해서 달리는 차 안에서 드디어 고통을 꺼내고 한껏 자조하던 가후쿠는 마침내 목적지, 자신과 닮아있는 운전기사 와타리의 심연, 순백으로 가득한 훗카이도에 도착해 자신의 이야기가 던지는 물음에 답하게 된다. 불가해한 사건들에 순응할 수 없고,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아가야한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결말부로 가는 모든 서사와 장치로 지어진 것 같다고 나는 이 영화를 느꼈다.
아무튼 지금껏 부조리의 비극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에 공감해왔는데, 이제는 내일의 희극을 기대하면서 살고 싶어졌다는 단순한 얘기를 덧붙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것보다도 가후쿠가 와타리에게 "우리 괜찮을 거야"라고 말할 때 제일 울림이 컸던 것 같다.^^
하루키 특유의 신비로운 여자 캐릭터는 역시 싫다, 파괴가 에로틱 욕망으로 발현되었다고 말하기 위해 지어진 불쾌한 상황이 싫다, 도구처럼 쓰이는 몇 등장인물들은 아쉽다, 여러가지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잠시 차치할 만 했다.^^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