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Los Angeles

시월 초 엘레가든 내한 콘서트에 다녀왔다. SNS에 감동적이었다는 몇 줄의 단상을 남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감상문을 남기지는 않았는데 한번 적어볼까 한다. 모든 순간이 꿈 속 같이 느껴졌는데, 몇 순간 만큼은 영원으로 머물 거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세트 리스트 중 <Goodbye Los Angeles>와 <金星>가 피로될 때, 주룩주룩 울었던 일이다.
엘레가든은 나의 십 대를 오롯이 지탱해 준 지팡이다. 십 대의 나는 오랫동안 홀로다. 가족이 있었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나는 밖에서 혼자인 시간이 너무너무 길었다. 혼자선 매일매일 헤매게 됐다. 혼란을 잠재워주는 일은 언제나 엘레가든의 가삿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뿐이었다. 호소미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길이 날 것 같았다. 혼자선 매일 잠도 잘 오지 않아서 밤을 지새워가며 엘레가든 앨범을 돌려 들었다. 일기장에는 나를 완전히 이해해주고 나를 이끄는 것이라고 적었다. 일기장들의 제일 앞 장에는 <Jitter-bug> 가사 전문이 적혀있다. 매일이 어둡다고 감각했는데 꼭 이 가삿말을 따라가면 빛이 보일 것 같았다.
그곳에 구원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엘레가든의 음악을 들으며 내가 나날이 나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엘레가든의 음악에 특히 감화되는 리스너로 남고 싶은 욕망에 충실하려니 내가 외톨이인 채로여야만 했다. 자꾸자꾸 혼자에 갇혔다. 이렇게 깨달은 건 아주 한참이 지난 후 였는데, 나는 바로 CDP를 제일 마지막 서랍에 처박고, 일기장은 책상 제일 하단에 먼지가 쌓이도록 둔 채 열어보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강박적으로 쓰던 일기를 그만둔 건 덤이다. 나를 이해해준다고 믿었던 첫 애인을 사귀고 나서부터는 엘레가든을 더이상 듣지 않았다. 더이상 엘레가든의 이름으로 펑크 장르에서 할 수 있는 음악이 없다고 선언한 뒤 호소미는 하이에이터스의 음악을 계속했다. 일을 다니면서는 호소미의 일기를 보지 않았다. 엘레가든 시대를 떠올리면 연민이 깃들 것 같아서 무섭다.. 그래서 더더더더더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
십 년만에 엘레가든이 재결성했다는 소식에 나는 떨더름했다. 엘레가든의 음악을 다시 열렬히 좋아하기에는 악동이 아닌 만큼의 성장을 마친 터라고 여겼고 엘레가든으로부터의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힘에 부친다고 깊이 느꼈다. 엘레가든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평생동안 괴로웠던, 가장 깊숙이 잠긴 슬픔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신보를 듣지 않은 건 물론이다. 일기장에는 하루하루 더 먼지가 쌓인 채로.. 그렇게 hiatus라는 휴지기의 밴드 이름 만큼이나 해가 묵었던 것이다.
콘서트 소식이 들려왔을 때 즈음에야, 억지로 엘레가든 신보를 들었다. 그리고 신보를 들으며 본가에서 가져온 십 대의 일기를 꺼내볼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음반 제목도 알지 못했다. 10년만의 앨범 타이틀은.. <The End of Yesterday>였다. 앨범이 끝나고 마지막 트랙을 돌려 다시 들으면서 여섯 시간이 넘게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Goodbye Los Angeles>는 어제를 떠나보내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었다.
십 대의 어느 밤에는 <金星(이하 긴세이)>를 들으며 내내 소리를 죽여 울며 밤을 새웠다. ‘나한테 소중한 거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라는 가사는 혼자 남겨졌을 때 정말로, 정말로 큰 위로가 된다. 정말로 그렇게 여기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살 수 있다.. 콘서트 마지막에 다달라 호소미의 굿바이 로스 엔젤리스를 열창하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내가 비로소 아직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리게 아픈 십 대를, 멋대로 신이라고 칭했던 호소미 타케시를 드디어 떠나보냈다는 걸 알게 됐다.
앵콜의 앵콜 마지막 곡으로 피로됐던 긴세이 때는 슬퍼서가 아니라 헤어짐에 눈물이 났던 거다. ‘이 밤이 끝나면 우리들은 사라져가.. 소중한 거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를 들으며 나는 울면서 영원같이 길었던.. 아픈 밤들을 마음을 퍼서 실컷 보내줬다. 십 년만에 다시 펼친 일기장에는 ‘엘레가든의 음악은 나를 제일 위로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라고 모든 장에 빼곡히 적혀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느꼈던 건 지금의 내가 그 과거로부터 온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그냥’ 소중한 걸 안타까워하면서 걷고 ‘그냥’ 사는 걸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더이상 과거를 부정하지도, 연민하지도 않는다. 그저 엘레가든 음악을 들으며 살아남은 나로 비롯된 지금을 살아간다. 그리고 십 년만에 호소미가 과거와 작별하는 곡을 써줘서, 나는 더 살 수 있을 것만 같아졌다. 그런 마음을, 호소미는..
그러니까 구원은 있었던 게 아닐까? 십 년 전에 십오 년 전에 나의 예수님이었던 호소미, 하루종일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에서 엘레가든 노래가 내내 흘러나오던 거, 부정적인 말을 쓰면 자신을 더럽힐까봐 일기를 꾸며 쓰던 내가 처음 학교를 다니기 싫다는 말을 노트가 찢어지게 썼던 이유가 살라멘더를 들으며 동요해서 때문이라는 것, 마이 페이보릿 송을 들으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시간이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위안받던 거, 항상 땅만 보고 걷던 내게 스테레오맨이라는 곡이 하늘이 되줬던 거, 미들 오브 노웨어를 들으며 동질감을 느껴서 외롭지 않았던 그런 일들…… 나는 엘레가든 콘서트에서 몰래 잉잉하고 울면서, 과거를 또 한번 멀리멀리 보내줬다. 십 년 만에 과거를 떠나보낸 노래를 들려주는 호소미, 십 년 전이나 오늘이나 언제나 나에게 최고의 록커인 호소미한테, 어릴 때도 지금도 호소미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라고 할 말을 전할 수는 없어서.. 대신 닿을 만큼 큰 소리로 노래만, 노래만 했다 그냥…
콘서트에 다녀온 이후 작은 방에서 긴세이를 큰 목소리로 부르며 나날을 보낸다. 긴세이를 들으며 더이상 나는 울지 않는다. 울지 않고도 매일매일매일 긴세이의 가사에 위로 받고 긴세이의 멜로디 때문에 내일의내일의내일을 또또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금성이 이른 저녁 낮은 하늘에 걸리는 여름이 되면 또 속상하기도 하겠지만… 또 밤은 지나가고 이듬날의 금성을 기다리고 오늘의 금성을 떠나보낼 수 있다. 호소미가 있었던 내 인생은 정말로 최고야!!! 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정말로.. 정말로….
20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