鋼の錬金術師 : BROTHER HOOD

Status
Completed
Period
2023/06/18 → 2023/10/30
Category
Rating
Emotion
Genre
Adventure, Steampunk
Release
2009.03.05 ~ 2010.07.04
Location
Production
Bones
Publishing
JNN
Provider
Producer
Hiroo Maruyama, Noritomo Yonai, Ryo Oyama, Nobuyuki Kurashige
Production Design
Director
Yasuhiro Irie
Writter
Hiroshi Onogi
Editing
transrator
DOP
Takei Toshituki
Lighting
Action
Art
Kanehara Kazushige(Design), Sato Takeshi(Director), Kanno Hiroki (Character Design), Aramaki Shinji (Magic Position Design)
Animator
Color
Visual
Music
Akira Senju
Sound
Mima Masafumi
Actor
Romi Park, Rie Kugimiya, Shin-ichiro Miki, Megumi Takamoto
Stunt
Episodes
64 episodes
Original
Hiromu Arakawa <鋼の錬金術師>
Favo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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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l
5
Level#
5
note
강철의 연금술사를 관통하는 사건은 군국주의 기반의 나라에서 군권력이 강압적으로 전 국민의 생명을 강탈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해당 권력의 치하에 있는 인물로써, 예정된 참사를 막고 현군부에 반대하는 반군과 힘을 합쳐 이 상황을 타계해낸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두 가지인데, 권력자들이 과거 생명을 강탈한 사건, ‘이슈발 학살 사건’―본작에서는 ‘이슈발 전쟁’으로 지칭하고 있음―이 존재한다는 점이고, 해당 학살에 강제로 가담했던 군인인 머스탱 대령이 마지막에 쿠데타를 치른 후 최고 권력자가 된다는 데에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 작품 자체가 지니는 모순은 스토리 목표의 상실에 있다. 이는 주인공 ‘엘릭 형제’의 ‘몸을 되찾고 싶은 소망’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정의’로 나아가는데, 최종 목적인 ‘국민의 생명’의 정의를 고려하지 않고 시작했다. 생명은 물리적인 운동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위의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슈발 학살 사건’은 권위주의 시대의 인권침해 사건이다. 이는 진상규명이 단순한 인과관계 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서의 맥락 속에서 진실을 규명해야하는 국가적 참사다. 이 사건은 진실을 통해서만이 정의가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학살을 행했던 군인인 것도 아이러니인데, 쿠데타 과정의 세부 묘사는 철저히 편리성에 의해 판타지성과 리얼리즘을 반복한다. 방송을 장악한 반군은 국민들에게 그저 끊임없이 자신들의 정당성만을 주장한다. 이러한 선동 과정은 저항 운동의 목적보다 국민 정서를 선점하는 데 있기 때문에… 라고 하지만 이가 결국 또 다른 국민의 정서적, 물리적 피해를 부가적으로 양산하고, 더나아가 국민의 정서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 부분은 역시 아쉽다. (개인적으로 쿠데타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애당초 쿠데타의 비판점 자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그리하여 국민의 판단 의지는 무가치하게 보일 뿐이다. 쿠데타에 다수의 합의와 충분한 과정이 어디있겠냐마는, 이 쿠데타가 시작된 지점이 ‘학살’에서 말미암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가 완전히 무시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또한 가장 중요시 되어야할 진실 규명이 부실한 문제는 특히 맥락에서 지우는 일이 심각한 문제처럼 보인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위로하는가의 문제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 중요하고 과거를 청산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거를 조금이라도 청산하기는 커녕, 이 쿠데타 과정이 역사적 실수를 반복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추가. 쿠데타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국군 진압 장면들에 있어, 국군의 죽음을 클로즈하게 잡는 부분이 여럿 있는데, ‘명령에 의해 이슈발 학살에 가담한’ 반군의 과거를 배제하기가 어려워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연출적 리얼리즘에 한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서도.. 우리는 어디까지 리얼리즘을 허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생각해봄직하므로.. 추가로 붙여본다.)
또한 여기서 로이 머스탱 대령이 최고 권력자로 거듭나는 엔딩을 맞이하게 되는데, 로이 머스탱 대령은 평화지향적인 인물이며, 민주주의에 가까운 국가를 이상으로 삼고 있고, 이슈발 학살에 대한 죄책감도 지닌 인물로, 작내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캐릭터의 특징을 사전에 소개함으로써 작가는 로이 머스탱 대령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로이 머스탱이 이상적인 통치자로써 가져야할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학살’을 스토리의 도구로써 사용했다는 증빙이 될 뿐이다. 작가는 단지 주인공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텍스트를 강조하는 바람에 배경의 힘을 모조리 잃어버린다.
이는 머스탱 대령이 단지 이슈발 학살에 가담한 ‘가해자’이기 때문에, 오류로 여겨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쿠데타 과정이 이슈발 학살 사건의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다, 국민들을 무기력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정작 과거와 진정한 화해가 필요한 피해자들은 오롯이 이러한 과정에서 반군의 진격에 간접적으로 힘을 싣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기까지 한다.(무지해보이기까지 한다..ㅠㅠ) 만약 학살 사건의 피해자가 쿠데타의 가장 중점, 또는 주연의 위치에 있었다면, 치유의 서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본작의 전개 방식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또한 끝내 학살 사건의 피해자로부터 화합을 얻어내지 못하는 서사가 나왔다면 이 소재를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봤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 최소한 학살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서, 머스탱 대령이 억울하고 참혹한 참사를 맞은 이슈발인에 있어서 진상 규명을 위한 행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부분까지 보여주었다면 아주 조금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연금술의 한계를 지정했다면, 얄팍한 히어로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참사에 대한 아주 조금의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학살자를 응징하는 살인귀(전前수도승으로써 확고한 믿음과 용서라는 주체성마저 빼앗았다.)는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무고한 의사를 살해한 과거가 있는데, 이 설정은 작품 내내 과장되어 그의 피해자성을 지우는 데에 힘을 싣는다.
로이 머스탱의 특장점에 더불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본작은 시종일관 이슈발 학살에 참가한 군인의 얼굴과 참담한 어조에 주목한다. 그들은 반복해 ‘이슈발 전쟁에 있어 우리는 무결하지 않다’ 고 말하지만, 이들의 언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일은 그들의 무결함을 강조하는 모순적인 텍스트로 작용할 뿐이다. (이슈발 학살 사건을 전쟁으로 지칭하는 것 또한 그렇다.)
찰스 벡스터의 <서브텍스트 읽기>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거의 매일 특정한 공인을 볼 수 있고 심지어 보도록 강요당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기득권을 뺏긴 사람들, 좌절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도록 장려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얼굴을 우리가 보고 싶어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 경우에 문학의 문제는 곧 정치의 문제가 된다.
다양한 어조는 특히 공식적인 언어, 공공의 문법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십대, 빈민, 소수집단, 좌절하고 상처받은 사람들, 희망없이 낙심한 사람들, 강박적·망상적인 사람들, 말 주변이 없는 사람들, 온갖 아웃사이더들에게 필요하다.
예술 매체는 언제나 소재에 있어 경각심을 가지고 대해야한다. 그것이 소수자, 피해자를 겨냥하고 있다면 더욱 고뇌의 과정이 오래 필요하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짜임새 있는 구조와 탄탄한 전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전을 다루는 무례함과 목적의 상실로 인해 모순이 가득한 작품이 되었다. 머스탱이 이슈발의 피로 만들어진 현자의 돌로 부활한다는 목적성도, 정당성도 불충분한 마무리는 밝은 연출과 희망적인 텍스트 배치를 통해 이 설정이 작내 시민들에게 잔인한 기억을 재상기시킬 거라는 시청자들의 도덕적 판단에 의한 상상력에 차단 스위치를 올린다. 마치 작품 속 국민들이 끝내 무지한 채로 새로운 군부를 맞이하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외부 텍스트는 덤이다.
(2023/11)